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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와 기인 사이, '도나형'의 아쉬운 퇴장

기자명 : 시사주간지… 입력시간 : 2020-11-26 (목) 19:40
디에고 마라도나가 1986년 멕시코 월드컵에서 우승컵을 들어올리고 있다. [AP=연합뉴스]

디에고 마라도나가 1986년 멕시코 월드컵에서 우승컵을 들어올리고 있다. [AP=연합뉴스]

 
세계 축구의 큰 별이 졌다. ‘축구 신동’ 디에고 마라도나(아르헨티나)가 26일 향년 60세로 세상을 떠났다. 3일 경막하혈종(뇌 경막 부위에 부기가 가라앉지 않는 증상)으로 뇌 수술을 받고, 11일 퇴원해 회복에 돌입한 지 보름여 만이다.

1986 월드컵 우승 이끌며 MVP 등극
약물과 마약, 탈세 등 구설수 낳기도
한국 축구를 사랑했던 '작은 거인'

한 시대를 풍미한 축구 스타 답게 남긴 족적이 굵직하다. 부침도 심했다. 조국에 월드컵 우승 트로피를 선사하며 MVP에 선정되는 영광을 누렸지만, 마약ㆍ알콜 중독ㆍ폭행ㆍ탈세 등 경기 외적 요인으로 인해 여러차례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마라도나 축구 인생의 하이라이트라 부를 만한 다섯 장면을 추렸다. ‘마라도나 매니어’를 자처하는 한준희 KBS 축구 해설위원의 도움을 받았다.
 
 디에고 마라도나에게 '신의 손'이라는 별명을 안긴 1986 월드컵 잉글랜드전. [AP=연합뉴스]

디에고 마라도나에게 '신의 손'이라는 별명을 안긴 1986 월드컵 잉글랜드전. [AP=연합뉴스]

◆‘신의손’으로 쟁취한 월드컵 우승
1986 멕시코 월드컵은 마라도나가 ‘월드 스타’로 발돋움한 무대다. 잉글랜드와 만난 8강전에서 마라도나가 심판의 눈을 속이는 교묘한 핸드볼 파울로 골을 넣은 후  ‘신의 손’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경기 직후 마라도나가 “신의 손에 의해 약간, 나머지는 머리로 넣은 골”이라 언급한 게 계기가 됐다. 같은 경기에서 하프라인 언저리에서 시작해 68m를 드리블한 뒤 골키퍼를 포함해 상대 수비수 6명을 제치고 넣은 골은 마라도나의 천재성을 입증하는 증거가 됐다. 마라도나는 5골 5도움으로 아르헨티나의 우승을 이끌며 대회 MVP로 선정됐다.
 
1986 멕시코 월드컵 한국전에서 허정무의 거친 파울에 쓰러지는 마라도나(왼쪽 두 번째). [로이터=연합뉴스]

1986 멕시코 월드컵 한국전에서 허정무의 거친 파울에 쓰러지는 마라도나(왼쪽 두 번째). [로이터=연합뉴스]

◆‘태권 킥’이 맺어 준 한국축구와 인연
수비수 서너 명을 순식간에 제치는 마라도나를 막기 위해 상대팀은 무자비한 파울 전략을 폈다. 마라도나가 볼을 잡으면 거친 몸싸움과 태클로 쓰러뜨리기 일쑤였다. 당시 32년 만에 월드컵 본선 무대를 경험한 한국 축구 또한 마찬가지였다. 우승후보 아르헨티나의 간판스타 마라도나를 막기 위해 김평석, 김용세, 박경훈, 허정무가 돌아가며 육탄방어했다. 볼을 걷어내려다 본의 아니게 마라도나를 걷어찬 허정무의 모습은 ‘태권 킥’이라는 타이틀로 전 세계에 소개됐다. 출발은 악연이었지만, 마라도나는 한국 축구에 우호적이었다. 한국과 일본이 2002월드컵 유치를 위해 경쟁할 때 공개적으로 한국을 지지해 도움을 준 일화가 유명하다.
 
1987년 나폴리의 이탈리아 세리에A 우승을 이끈 뒤 환호하는 마라도나. [AP=연합뉴스]

1987년 나폴리의 이탈리아 세리에A 우승을 이끈 뒤 환호하는 마라도나. [AP=연합뉴스]

◆나폴리에 강림한 축구의 신
현역 시절 마라도나의 전성기는 1984년부터 1991년까지 7년간 몸담은 나폴리(이탈리아) 시절이다. 마라도나 입단 이전엔 그저 그런 2류 팀으로 평가받던 나폴리는 ‘작은 거인’을 앞세워 유럽 톱 클래스 강자로 성장했다. 1987년 이탈리아 세리에A(1부리그) 정상에 오른 데이어 1988년과 1989년에는 유럽축구연맹(UEFA)컵(현재는 유로파리그로 변경) 우승 트로피를 잇달아 품에 안았다. 나폴리 팬들이 마라도나를 ‘나폴리의 왕’, ‘축구의 신’ 등으로 부르며 추앙하는 이유다.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 4강에서 이탈리아를 무너뜨린 뒤 환호하는 마라도나. [AFP=연합뉴스]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 4강에서 이탈리아를 무너뜨린 뒤 환호하는 마라도나. [AFP=연합뉴스]

◆굿바이 이탈리아, 내리막의 시작
1990 이탈리아 월드컵은 마라도나의 진가를 다시금 일깨운 무대지만, 한편으론 마라도나가 사랑하던 이탈리아 리그와 결별하는 이유가 됐다. 아르헨티나가 준결승에서 마라도나의 활약으로 이탈리아를 꺾은 게 발단이 됐다. ‘역대 최강’을 자부하던 이탈리아를 떨어뜨린 후폭풍은 컸다. 대회 이후 이탈리아 언론과 팬들이 연일 비난의 목소리를 쏟아냈을 뿐만 아니라 살해 위협까지 등장했다.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리던 마라도나는 마약에 손을 댔고, 선수 이력의 내리막을 걸었다. 1992년 세비야(스페인)로 이적하며 이탈리아 무대를 떠났지만, 몸과 마음이 피폐해진 상태였다.
 
1994 미국 월드컵 나이지리아전 직후 도핑테스트를 받으러 가는 마라도나. 금지약물 양성 판정을 받아 남은 경기 출전 자격 징계를 받았다. [AP=연합뉴스]

1994 미국 월드컵 나이지리아전 직후 도핑테스트를 받으러 가는 마라도나. 금지약물 양성 판정을 받아 남은 경기 출전 자격 징계를 받았다. [AP=연합뉴스]

◆기행으로 얼룩진 인생 2막

중심을 잃은 마라도나의 이후 삶은 좌충우돌의 연속이었다. 1994년 미국 월드컵 나이지리아전(아르헨티나 2-1승) 직후 금지약물인 에페드린을 복용한 사실이 적발돼 국제적인 망신을 당했다. 마약과 알코올에 의존했고, 탈세와 폭행 등 숱한 물의를 일으켰다. 자신의 별장을 찾아온 취재기자에게 공기총을 쏴 법정에 서기도 했다. 현역 은퇴 이후 아르헨티나 A팀을 비롯해 알 와슬(UAE), 알 푸자이라(UAE), 시날로아(멕시코), 힘나시아(아르헨티나) 등 여러 팀 감독을 맡았지만, 지도자로서도 빛을 보지 못했다.

[출처: 중앙일보] 천재와 기인 사이, '도나형'의 아쉬운 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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